창덕궁 평원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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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[편집]
창덕궁 낙선재 구역에 있는 정자이다. 낙선재의 서북쪽, 승화루의 동쪽에 있다. 한정당, 취운정과 더불어 낙선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.
2. 이름과 현판[편집]
현재 이름은 '상량정(上凉亭)'이다. '상량(上凉)' 뜻은 '시원한 곳(凉)에 오르다(上)'이다. 높은 지대에 있어 붙은 이름인 듯 하다. 순종 시기에 만든 《동궐도형》에 평원루로 나온 것을 보아 일제강점기에 지금 이름으로 바꾼 듯하다. 일단 이 문서에서는 원래 이름인 '평원루'로 표기했다.
평원루 현판은 청나라의 서예가, 문인이었던 옹방강의 아들 옹수곤(翁樹崑, 1786 ~ 1815)의 글씨를 모아 만들었으며,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. 지금 평원루에 걸어 둔 상량정 현판 글씨는 전통 방식과 다르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있다.
3. 역사[편집]
언제 지었는지 모른다. 1828년 ~ 1830년 사이에 그린 《동궐도》에는 보이지 않으나, 1849년(헌종 15년)에 낙선재를 방문한 화가 소치 허련이 남긴 기록에는 나오므로, 그 사이에 지은 듯 하다.
이후 큰 변화 없이 몇 번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.
4. 구조[편집]
- 자세한 내용은 이 포스팅을 참조.
건물 북쪽에는 단청을 칠하지 않은 11칸 짜리 창고[5] 가 있고 동, 서, 남쪽에 담이 있다. 문은 동남쪽과 서쪽에 각각 하나씩 있다.
그 중 벽돌로 만든 서쪽의 만월문(滿月門)이 유명하다. 다른 궁궐 문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. 출입구가 보름달처럼 둥글며 문짝은 미닫이 형식이다. 이런 모습은 현재 궁궐 문 중에서는 유일하다. 또한 문 양 옆 담에 벽돌 문양을 넣어 아름답게 만들어놓았다. 특히 만월문에서 바라본 상량정 풍광은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은 모습이다. 만월문을 지나면 승화루 뒤뜰이 바로 나온다.
5. 여담[편집]
2015년 11월에 독일 베를린 포츠담광장에 세웠던 정자 통일정은 평원루를 본따 만든 것이다. 분단되었던 독일이 통일한 것처럼 한국도 통일하길 바라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.# 《꽃보다 할배 리턴즈 - 감독판》에서도 나왔다.# 2020년 11월에 설치 기한 만료로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 경내로 옮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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〈창덕궁 달빛기행〉 코스 중 한 곳이다. 상량정에서 대금 연주를 들으며 밤하늘의 달빛을 감상하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.
6. 매체에서[편집]
평원루가 나온 적은 없지만, 위에 언급한 만월문은 세트로 재현한 모습으로 여러 사극에 등장했다. MBC에서 만든 사극 촬영장 용인대장금파크에 있다. 그런데 벽돌 색이 경복궁 교태전 꽃담 색인 황토색이며 무늬도 다르다.
[1] 첫번째 사진 출처 - 카카오맵.
두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: 창덕궁 낙선재.[2] 사진 출처 - 국립고궁박물관.[3]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《궁궐의 현판과 주련-창덕궁_낙선재 권역 2》. [4] 사진 출처 - 카카오맵.[5] 《동궐도형》에 따르면, 원래는 동남쪽에 3칸이 더있어 14칸이었다.[6] 첫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: 사진 자료실 〈창덕궁의 가을〉.
두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: 창덕궁 낙선재.[7] 사진 출처 - 〈뉴시스〉
두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: 창덕궁 낙선재.[2] 사진 출처 - 국립고궁박물관.[3]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《궁궐의 현판과 주련-창덕궁_낙선재 권역 2》. [4] 사진 출처 - 카카오맵.[5] 《동궐도형》에 따르면, 원래는 동남쪽에 3칸이 더있어 14칸이었다.[6] 첫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: 사진 자료실 〈창덕궁의 가을〉.
두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: 창덕궁 낙선재.[7] 사진 출처 - 〈뉴시스〉